강병중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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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들에게 ‘무조건 저질러라’고 부탁을 합니다. 
기업의 회장이든 임직원들이든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열정이고, 도전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실패를 하더라도 책임은 회사가 질테니 뭐든지  해보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No Risk, No Gain!’이란 말도 있듯이,  무엇이라도 해야 얻을 게 있지 않겠습니까.

진솔한 삶 이야기

500석 하던 부잣집 아들고학하며 대학 졸업결혼과 함께 시작한 사업근면 검소한 생활인자한 할아버지
결혼과 함께 시작한 사업 - 강병중 회장은 대학 졸업을 앞둔 26살 때 같은 마을에 살던 세 살 아래인 아가씨와 결혼했다. 그 아가씨가 바로 부인인 김양자 여사다.  예나 지금이나 한마을에서 결혼한다는 게 서로의 약점을 훤히 알기 때문에  쉽지가 않은데, 두 집안 모두 이렇다 할 흠이 없었다. 두 집안 할머니들끼리 혼약도 맺어져 있었다.   
처가댁은 장인어른 4형제 가운데 3형제가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두 사람은 일본에 남고, 김여사 가족만 해방 후에 나와 정미소를 운영하고 있었으며, 논도 많아 시골에서는 부자 소리를 듣고 있었다. 
또 일본에 남은 두 형제는 어릴 때 공부를 못한 것이 한이 되어 고향에 이반성중학교까지 세웠는데, 김양자 여사는 이 학교를 맡아 관리하면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같은 마을에 사는 해방 전 큰 부잣집 아들과 해방 이후 큰 부자가 된 집의 딸이 평생의 반려자가 됐다는 점에서 인근 마을까지 떠들썩하게 했다.  

강회장은 결혼한 다음해에 자신의 첫 사업인 일본 중고트럭을 수입해 판매하는 사업에 뛰어들면서 운명처럼 기업가의 길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