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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상의 대훈장 수상 소감>
류진수 김해상공회의소 회장님을 비롯한 기업인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가락국의 찬란한 전통을 이어받은 김해시 상공인들의 경제단체인
김해상공회의소로부터 대훈장을 받게돼 무척 영광스러우면서도
감회가 새롭습니다.

김해는 인구가 53만 명을 넘어섰으며 끝없이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습니다.
‘가야 왕도 김해’라는 도시 브랜드를 내세워 문화와 관광, 교육도시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해가는 중입니다.
경남에서는 가장 역동적인 지역이며, 창원을 추격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저출산과 고령화 현상으로 지방소멸이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로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도시들은 생존을 염려해야하는 처지인데,
김해의 발전은 괄목할 만 합니다.
김해시의 성장과 발전은 이 자리를 함께해주신 기업인 여러분들이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며 가꾸었던 노력 덕분입니다.
김해에서 30여 년 동안 기업을 경영해온 사람으로서 감개가 무량합니다.

지금부터 제가 걸어온 길을 간략하게 소개드리고,
경영철학이라고 할까 기업 경영의 주안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1939년 경남 진주시 이반성면에서 태어났습니다.
500석 이상 농사를 짓던, 시골에서는 부잣집이었습니다.
세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중학생 때 아버지가 작고하였습니다.
자유당 시절 농지개혁을 하는 바람에 논밭은 소작인들에게 돌아갔고,
농지증권은 집안 어른이 사업을 한다며 모두 날려버렸습니다.

가세가 기우는 바람에 힘들게 공부하였습니다.
마산고등학교를 거쳐 군복무를 마치고 부산 동아대 법대에 입학하였습니다.
돈을 벌어가며 학교에 다니느라 고시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6년만에야 대학을 졸업하였습니다.


대학 졸업 후 지금의 아내인 이웃마을 아가씨와 결혼하였습니다.
처삼촌 두 분이 일본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 인연으로 중고 화물자동차를 일본에서 수입하여 판매하였고,
직접 운영하는 운수회사도 차렸습니다.
옥정산업과 옥정운수입니다.

또 일본에서 목격했던 바퀴가 세 개 달린 일명 삼발이 자동차를
기아산업에 제조 의뢰하여 용달차라고 이름을 짓고
부산의 좁은 골목길이나 이면도로에서 운행하였습니다.

당시 운수회사의 수입은 적지 않았지만
타이어 수리와 교체에 지출이 많았습니다.
이런 계기로 타이어 제조업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타이어 재생공장을 넘겨받아 흥아타이어 주식회사를 차렸습니다.
자동차 튜브를 본격 생산하여 기아산업 등에 납품하고 중동에 수출하였습니다.
이때 일본 스미토모 고무에 납품하게 되었는데, 보름쯤 지나자
사장과 공장장, 품질 책임자를 일본에 오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가 보낸 제품을 사진을 찍어 파워포인트에 올려놓고 보여주면서,
타이어는 인명과 관계되는 제품인데,
타이어의 한쪽은 두껍고 다른 한쪽은 얇다,
접촉부분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품질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낀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설득하여 기술제휴를 맺어 기술 지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 스미토모에 계속 수출하였고, 미국 시장에도 진출하였습니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는 미국 제품의 30% 가격에 불과하여 인기를 얻었습니다.

미국의 타이어 쇼와 독일 에센 타이어 박람회에 참가하면서,
굿이어나 파이어스톤 같은 유수의 타이어 제조업체에 수출하게 되었습니다.




부산 남천동에서 시작한 흥아타이어 공장이 반여동으로 옮겨졌고,
다시 공장 확장의 필요성이 제기돼 김해 안동공단 2만평 대지에
단일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공장을 지었습니다. 1986년의 일입니다.
그 공장이 넥센타이어의 모기업인 ㈜넥센입니다.

김해에 자리잡고 있을 때 부산상의 회장에 당선돼 3연임하게 되었고,
금융그룹을 세울 계획으로 경남리스와 제일투자신탁을 설립하였습니다.
1980년대 후반 1억 달러 수출을 했는데, 당시로서는 큰 금액이었습니다.
IMF 외환위기 직후 부실기업인 우성타이어를 인수해
넥센타이어라는 초우량기업으로 환골탈태시켰습니다.

그러므로 김해는 제가 기업인으로서 성장하는 기반이 된 지역입니다.
이 자리에 선 감회가 더욱 새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넥센 김해공장은 한일합섬, 금성사 김해공장이 문을 닫은 이후
종업원이 가장 많았던 업체였습니다.
지금은 류진수 회장님의 공장이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넥센 김해공장은 인건비 문제로 종업원을 더 줄여야 하는 형편인데
지난해와 올해 퇴직자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중국에서 벌어와 김해를 지원하는 형편입니다.
성장 가능성이 높은 품목을 중심으로, 또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
김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도록 할 계획입니다.

IMF 외환위기 직후 우성타이어를 인수했습니다.
우성타이어가 부실했던 까닭은
관리 부재와 영업 정책, 연구 개발 기능의 취약 때문이었습니다.
품질 극대화와 브랜드 가치 키우기에 나섰습니다.
라스베이가스의 세마 쇼, 독일 에센 쇼, 중국 상하이 모터 쇼,
이탈리아 블로니아 모터 쇼 등 세계적인 박람회에 참가하였습니다.

3개월 만에 법정관리에서 벗어났고,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켰습니다.

2000년 2월 넥센타이어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인수 당시 1,500억 원이었던 연간 매출이 지금은 1조 8,000억 원 규모로
늘어나는 비약적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중국 칭다오 부산 전용공단에 넥센타이어 공장을 건설하여 생산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한 해 생산 판매되는 차량이 2010년 기준 1,800만 대로
우리나라 전체 자동차 수와 비슷합니다.

2012년 준공된 창녕 공장은 모두 1조 2천억 원을 투입하여,
유럽 일본 미국의 최신 최첨단 친환경 설비를 갖추었습니다.
공장 지붕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하여 전기를 생산하고
자연채광시스템으로 내부를 밝게 바꾸었습니다.

기존 공장에서 2명이 하던 일을 창녕공장에선 1명이 하므로
생산성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넥센타이어 공장이 들어서자 창녕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경남의 농촌지역과는 달리 땅값이 오르고 인구가 늘어났습니다.
창녕지역 고등학교에 장학금과 교육기자재를 제공하고 취업도 시켰습니다.
지역사회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으리라 확신합니다.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해 1조 2천억 원을 들여
체코 자테츠 지역에 약 20만 평 규모의 신공장을 건설 중입니다.
2018년 가동되면 폭스바겐, 스코다, 세코다 등
유수의 글로벌 자동차메이커에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을 것입니다.

품질이 세계적 수준이 되지 않으면 세계시장에 나설 수 없으므로
연구 개발에 집중 투자하였습니다.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까지 연구 인력을 대거 스카우트하였습니다.
최근 7∼8년간 연구소 인원을 3배 이상 늘렸습니다.
몇 년 전 82명이던 연구 인력이 300명 이상으로 늘렸는데,
앞으로 500명 이상 확충할 계획입니다.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서울 마곡동에 연구소를 건립 중입니다.
국내 뿐 아니라 미국, 중국, 독일 등지에도 해외 기술연구소와 연구개발센터를
계속 세워서 지역별 특성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승패는 유능한 인재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친인척을 회사에 두지 않고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의 많은 부분을 맡겼습니다.
홍종만 부회장, 이현봉 사장 등 삼성 출신들이 회사를 쭉 맡아왔습니다.
관리능력이 뛰어나고 기술과 지식이 많았습니다.

투명 경영에 힘써왔습니다.
20년 동안 노사분규없이 협력적 노사관계를 구축하였습니다.
매년 초에 국내 기업들 가운데 가장 먼저 주주총회를 열어 재무 상태와
경영 성과를 공개하였습니다.
회사의 경영상태를 직원들이나 주주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쉽게 알 수 있게
매월 공개했던 적도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투명 경영 우수기업, 대한민국 투명회계 대상,
재무혁신 기업 대상, 한국 CFO 대상 등 큰 상을 받았습니다.

스피드 경영에 주력하였습니다.
지속적인 연구 개발로 품질 향상, 적극적 시장 개척, 대규모 생산 투자,
브랜드 키우기를 통해 복합적 시너지 효과를 냈습니다.
한국경영자협회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상, 다산 경영상을 수상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현대 경영학 원론이라는 책자에 ‘넥센타이어의 스피드 의사결정’이라는
제목으로 두 페이지에 걸쳐 소개되었습니다.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사회공헌 활동에 힘써왔습니다.
1995년 설립된 KNN문화재단과 2008년 설립된 넥센월석문화재단을 통해
부산 경남의 중고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오순절 평화의 마을 등 사회복지시설과 소외된 이웃들을 돕고 격려해왔습니다.
월석선도장학회를 통해 2003년부터 1년에 두 차례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왔습니다.
김해상공회의소가 주신 대훈장에 걸맞게 기업경영과 사회공헌 활동에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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