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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상공회의소의 130주년 기념식 인터뷰>
<부산상의 130주년 기념식 인터뷰>

부산상공회의소 창립 130주년을 전 상공인들과 함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기업 경영과 관련한 경험담을 잠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에 경제개발이 한창일 때 중고화물자동차 수입을 하여
자동차와 인연을 맺었는데 타이어의 중요성을 알았습니다.
흥아타이어를 인수하여 키워 나간 게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1999년 외환위기 직후 우성타이어가 매물로 나왔습니다.
당시 채권단이 국내외 타이어업체에 인수를 제안했으나
국내에서는 흥아만, 해외에서는 미쉐린만 응찰하였습니다.
우리는 좋은 조건에 M&A를, 마쉐린은 공장만 인수하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우리 쪽으로 오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우성은 연구인력이 거의 없다시피 했고, 노조는 강성이었습니다
주변에서 “왜 부실 회사를 인수하려 하느냐”며 말렸습니다.

노조 간부들을 만났습니다. 처우개선과 고용승계를 약속했습니다.
부정부패가 없도록 구매는 구매부서로 일원화시켰고,
돈을 아끼지 않고 국내외 연구인력을 스카우트하였습니다.

브랜드 가치를 키우기 위해 넥센타이어로 개명하였고,
프로야구 히어로즈와 스폰서 협약을 맺었습니다.
넥센타이어를 알리는데 도움이 되었으며 야구단도 덕을 보았습니다.
지금은 영국 프리미어 축구단 맨체스타시티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품질을 극대화 시키고 브랜드 가치를 키웠습니다.
경영 상태를 노조와 주주에게 모두 공개하는 투명경영을 하였습니다.
3개월 만에 법정관리에서 벗어났고 1년 만에 흑자 전환했습니다.

인수 당시 1500억 원이었던 연 매출이 지금은 2조 원으로
비약적 성장을 하였습니다.
타이어만 금년에 2조 5000억 원,
앞으로 10년 이내 연 매출액 7-8조 원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상의 회장 시절 기업들이 동남아로 많이 진출했는데
중국 청도 시장과 협의하여 전기, 수도료를 감면하고
토지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부산 상공인들을 위한 공단을 조성했습니다.
저도 이 곳에 공장을 세웠고, 그 때 청도에 진출한 부산 기업들은
모두 잘 되었습니다.

제조시설의 확장이 절실해 해외이전이 아닌
창녕에 최첨단 친환경 공장을 세워 주민들을 대거 채용했습니다.
지역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입니다.
그야말로 스마트공장입니다.
자동차산업 본산인 유럽에 본격 진출하기 위해
체코에 공장을 지어 최근 가동 중입니다.
모두 4개의 공장을 지을 예정인데, 4공장은 근로자가 없는,
전 자동으로 지어집니다.
체코 프라하에서 약 50분 거리인 자데츠 지역입니다.
관광오시는 분들은 한번 들러주십시오.
자동차가 전기차, 수소차, 무인자동차로 발전하듯이,
타이어도 급제동 시 바로 멈추거나 타이어 소리가 나지 않으며,
이산화탄소가 저감되는 제품으로 개발됩니다.

넥센타이어는 150개국에 판매되고 있는데
미국 유럽 등 해외법인이 두 곳이며
해외지점이 17곳에 이릅니다.

올해 서울 마곡지구에 2000억 원을 들여 중앙연구소를 완공하였습니다. 본격적인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려고 합니다.
석사 박사만 500명이 넘습니다.
인재를 우대하며 끊임없는 기술개발만이 세계의 벽을 넘을 수 있습니다.

상공회의소 회장 시절 역점 사업을 소개하겠습니다.
제가 상의 회장에 취임했을 때 부산 경제는 최악이었습니다.
합판 가발 섬유가 호황을 구가했고 이런 산업이 사양화될 때
신발업이 뒤를 이었습니다.
구미와 인천 남동공단이 조성돼
부산과 함께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주도하였습니다.

1987년 민주화운동과 함께 고임금이 되면서 국제경쟁력이 악화되어
상당수 업체는 도산하고 일부는 해외로 이전하였습니다.
그래서 상의 회장 경선 때 삼성자동차와 선물거래소 부산 유치를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1994년 회장에 취임하자마자 인사차 서울에 방문했을 때,
삼성자동차 설립이 추진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청와대에 가니 홍인길, 김무성 씨 등 부산 경남 출신 인사 10여 명이
반겼는데, 삼성차 부산 유치 문제를 거론하니,
일부는 ‘대구로 가기로 결재가 났으니 물 건너갔다’고 하고,
다른 일부는 ‘부산 갈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며 옥신각신했습니다.

당일 부산에 돌아올 계획이었는데 최형우 장관, 박관용 비서실장,
박재윤 경제수석을 만났습니다.
하루 더 머무르면서 김철수 상공부장관, 문정수 사무총장도 만났습니다.

부산에서는 시민단체들과 함께 ‘자동차산업 부산유치 범시민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100만 명
서명운동에 들어갔습니다.
자동차공업협회 등 기존 완성차업계가 거세게 반발했습니다만,
1994년 말 세계화 전략을 추진했던 당시 김영삼 대통령 정부를 설득해
부산에 삼성자동차가 설립되었습니다.

박재윤 경제수석과는 애증이 교차했습니다.
삼성차 부산유치에 소극적이어서 공항에 “박재윤 물러가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나가겠다고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부산대총장이 되어 상의 회장실을 방문하였습니다.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 연구교수로 가있을 때 찾아기도 했고
며칠 전에도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참으로 애환이 깃든 삼성자동차 유치 운동이었습니다.
주종산업이 없었던 부산에 부품산업, 기계 산업이
자리 잡는 계기가 된 것은 틀림없습니다.

선물거래소 유치 과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울에 금융기관이 집중된 현실에서 부산 울산 경남의 기업인들은
서울에 가야 금융 관련 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 자주 방문했던 오사카에는
일본 9대 은행 가운데 4대 은행 본사가 있었습니다.

싱가포르에는 600여 개 각종 외국계 금융기관이 진출해있고
선물거래소 등 금융서비스업이 국민총생산의 40%나 차지하였습니다.

부산도 금융도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동남은행, 제일투자신탁, 상은리스 등 금융기관 설립에 동참하거나
직접 투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IMF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1994년 선물거래소가 설립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환균, 윤증현, 강만수 씨 등 재경원 고위간부나
재경원 출신 경제통들을 만나 ‘선물거래소 본사를 부산에 둔다’는
조항을 선물거래법에 넣도록 설득하였습니다.

임창렬 부총리가 참석한 난상토론에서는 서울측 인사들이 책상을 치고
고함을 질러 뜻밖의 수모를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외환위기를 맞게 되었고 김대중 정부로 바뀌었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상의에서 후보 초청 간담회를 했을 때,
‘선물거래소 부산 설립’을 제1 공약으로 택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99년 선물거래소법이 통과되었을 때 이규성 부총리가 부산 설립에 반대했는데
결국 여당의 김원길 정책위의장, 박광태 제2 정책조정실장의 도움을 받아
1999년 선물거래소가 부산에 설립되었습니다.

박광태 실장은 “대통령이 세 번 지시했는데 거부할 거냐”라며
고함을 질렀습니다.
상공회의소 건물 2개 층을 무상 임대하여 출발하였는데 잘 되었습니다.
선물거래소 일로 재무부에 자주 드나들다 보니 제 큰 사위도
재무부에서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삼성차 유치는 기존 업체와의 싸움이었던 반면,
선물거래소 유치는 서울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선물거래소가 큰 성공을 거두게 되니
증권거래소, 코스닥거래소와 통합돼 한국거래소 본사가 부산에 있습니다.
다만 주요 기능이 서울에서 이루어지는 게 너무 아쉽습니다.

올해 부산 금융중심지 지정 10주년을 맞았습니다.
여러 공공 금융기관 본사가 부산으로 이전했습니다만, 아직 부족합니다.
과거 조흥은행 본점을 유치하려다 영남본부 설립을
약속받았는데 아쉽게도 무산된 적이 있습니다.
정부의 제2차 공공기관 이전 때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규모 큰 금융기관 여러 개가 부산에 유치돼 활력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외국계 금융기관도 부산에 올 수 있습니다.

20대-30대 청년층의 ‘탈 부산’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양질의 일자리인 금융기관 유치로 부산이 더 젊어져야 합니다.

삼성자동차와 선물거래소를 유치해도 사람과 기업은
여전히 서울로 집중되었습니다.

그래서 김대중 후보에게 수도권 규제 강화를 요청했고
수도권정비법을 개정하여 대규모 공장이나 4년제 대학의 수도권 신설을 억제하였습니다. 서울 집중이 그나마 다소 줄어들었습니다.

당시 경기도 지역에 공단이 하나 들어서면 인구가 30만 가까이 늘어나
군 지역이 시로 승격되고 상공회의소가 신설되었습니다.
지금 경기도에는 시가 20개이며 상공회의소가 22개나 세워졌습니다.
수도권이 억제되니 가령 삼성전자의 가전 부문이 광주로,
나머지 제품들은 충남 탕정으로 생산기지가 옮겨졌습니다.

그런데 몇 년 지나지 않아 대통령령으로 수도권 규제가 조금씩 풀려
수도권 집중과 과밀화는 더욱 심각한 상황입니다.

경영 철학에 대해 잠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해외 타이어쇼에 많이 다니다보니 외국인들이
저에게 ‘타이어 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55년 동안 타이어라는 한 우물만 파왔습니다.
그래야 전문성이 키워집니다.
저는 모르는 사업은 손을 대지 않습니다.

스피드 경영도 내세웁니다.
결정은 신중하게 하되 결론이 나면 신속하게 추진했습니다.
대학 경영학 교재에도 소개되었습니다.
메모하는 습관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의 좌우명은 심청사달과 천고마비입니다.

심청사달은 마음이 맑고 욕심이 없으면 일이 잘 풀린다는 뜻입니다.

천고마비는 천천히, 고개를 들지 말고, 마음을 비운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하면 골프도 잘 되지만, 사업도 잘 됩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정도 경영이 필요합니다.
회원 여러분의 기업 경영도 원활하게 이루어져
부산 발전에 원동력이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 내용 중 일부는 시간 관계상 생략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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