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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민이 40년 기다려온 금융중심지

<2012년 12월 18일 국제신문 CEO칼럼>

이제는 금융중심지라는 말만 들어도 식상하다고 하는 부산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잘 돼가는 것처럼 발표를 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또 어렵다고 하니 언제 실현이 될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공장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어서 실현이 된다 해도 부산에 얼마만한 혜택이 돌아올 것인가 하고 미심쩍어 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다.
따지고 보면 이런 회의적 반응이 잘못된 것도 아니다. ‘부산 금융도시’란 말은 정부가 개발계획으로 발표했던 때부터 쳐도 그 역사가 무려 40년이나 된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부산은 1971년에 수립돼 그 다음해부터 시행된 정부의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에서부터 서울과 함께 비중 있는 금융도시로 육성해야 한다고 설정돼 있었다. 이런 계획은 80, 90년대의 국토종합개발계획과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으로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늘 ‘계획’에만 들어있었고, 90년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시도조차 되지 않았다. ‘부산 금융도시’란 말은 대통령 지방순시 때 한 두 마디 체면치레로 붙이는 정도였다고 기억된다.
1990년대 중반 부산상의회장을 맡고 있었을 당시에 필자는 부산이 중추관리기능을 가진 산업도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금융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또 사업차 들리던 오사카에 일본 9대 시중은행 가운데 스미토모, 산와, 다이와, 다이요고베 등 4개 은행의 본사가 자리를 잡고 도쿄와 경쟁하는 것을 보고 부산이 수도권과 대칭되는 금융중심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직접 금융업에 뛰어들었다. 정부의 국제금융도시 육성 계획을 굳게 믿었던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동남은행을 부산에 설립하도록 주선했고, 제일투자신탁도 부산상의 주관으로 공모를 해서 세웠고, 상은리스도 상업은행장과 의논해서 부산에 본사를 두도록 했다. 당시 부산에 부산생명보험이 있었기 때문에 인근 마산에다 경남생명보험을 설립했다. 또 경남리스에도 대주주가 됐다. 이렇게 해서 이들 5개 금융기관에 직간접으로 참여하여 부산 금융중심지의 기초를 닦으려 했다.
그런데 IMF 사태로 모든 것이 허사가 돼버렸다. 경남생명과 제일투자신탁은 운 좋게 매각을 했지만, 나머지 3개 회사들은 IMF가 터지는 바람에 팔지도 못하고 투자한 것이 모두 종이로 변하고 말았다.
IMF 사태가 터지고 난 후의 부산은 금융중심지는 고사하고, ‘금융기반이 무너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IMF 관리체제가 시작된 직후에 5개 종합금융회사 가운데 한솔 고려 신세계 항도 등 4개 종금사가 퇴출됐고, 하나 남은 LG종금마저 서울 본사의 금융회사에 흡수됐다. 그 몇 개월 후에는 부산에 본점을 둔 동남은행마저 결국 문을 닫았다. 부산 기업체들의 자금사정이 극도로 악화돼 부도가 잇따르는 다급한 상황에서 지역 금융기관들마저 구조조정으로 문을 닫은 것이다.

당시 부산상의 등이 중심이 돼 청와대와 정치권에 “동남은행을 인수한 주택은행 본점을 부산으로 옮겨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했으나, 본점 이전은 성사시키지 못하고 대신 동남은행 본점 건물에 주택은행 영남지역총본부가 들어서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IMF 사태와 금융기관 퇴출은 기업은 물론 지역사회 전체가 금융산업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만들었던 뼈아픈 교훈이었다.
지금 부산 금융중심지는 정부와 정치권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중심지 정책이 기반이 취약한 부산이 아니라 특별한 지원이 없어도 잘 될 수 있는 수도권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문제다. 다양한 청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장외거래 중앙청산소(CCP)를 부산에 설치하려는 자본시장법 일부 개정안이 지난달 국회 정무위를 통과했으나, 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린 것이 단적인 예다.
다행히도 유력한 대선 후보 두 사람이 모두 선박금융공사와 금융전문대학원의 부산 설치와 각종 지원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이것이 실천돼 부산이 차별화된 특화금융기능을 가지게 되고, 시민들이 40년을 기다린 보람을 느끼게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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